6월, 2017의 게시물 표시

밥상의 사회 계급 - 장교 식당과 사병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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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카투사로 미군들과 근무했을 때, 미군애들의 재미있는 습관이나 행동거지들 몇가지를 보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인종간의 갈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Finance 부대였습니다.   한마디로, 행정병들로 구성된 부대였지요.  또, 부대의 1/3 정도가 흑인, 1/3은 멕시칸, 나머지 1/3이 백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다른 부대보다 소위 '유색인종'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는데, 고참 말에 따르면 특히 흑인들은 '사무실 근무'를 선호한다고 하더군요.  원래 흑인들은 육체 노동을 싫어하고, 사무실에서 펜대 굴리는 직업을 꼭 얻고 싶어한다고요.  저도 그랬지만 제 고참도 당시 인종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때이므로 뭐 그 이야기는 꼭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의외로, 어쩌면 당연히, 미군들 사이에 인종간 갈등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안 띄였습니다.  다만, 인종간의 벽을 느낄 수 있었던 경우가, 바로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무슨 규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같은 부서에서 사이좋게 일하다가도, 점심 시간만 되면 같은 색깔끼리 모이더군요.  물론 전혀 예외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 규칙은 거의 잘 지켜지는 것 같았습니다. 밥먹는 것이 뭔가 좀 신성한 의식이라도 되는 것 같지요 ? 생각해보면 제가 제일 좋아했던 한국 영화인, 한석규 주연의 '넘버 쓰리'에서도 연관된 장면이 나옵니다.  막가파 두목인 송강호가, 어떤 폭력 의뢰인과 일식집 방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지요., 그 의뢰인이 한쪽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송강호의 졸개들을 보고, '자네들도 좀 들지 그러나' 했더니, 송강호가 했던 대사 기억나십니까 ? "전 밑에 있는 애들하고 겸상 안받습니다." 즉, 일은 같이 하고, 옷도 비슷한 걸 입고, 같이 고생을 하더라도, 신분이 다른 사람들은 밥먹을 때 따로 먹는 것이 사회의 깰 수 없는 규칙이다 라는 것이...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배급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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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 서부전선으로 배송된 식량의 양은 무려 324만톤에 달했습니다.  324만톤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아무튼 엄청난 양인 것만은 확실하지요.  덕분에 대전 초기, 영국군의 급식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1인당 하루 배급량은 빵과 건빵 외에도, 280그램의 고기와 230그램의 채소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채소보다 고기의 공급량이 많은 것을 보면 정말 영국인답지요 ?  ( 영국인은 하루에 네끼를 먹었다 http://blog.daum.net/nasica/5561033 참조 ) 이 당시 영국군의 주된 식량은 bully라고 불렸던 소금에 절인 쇠고기 깡통과 빵(또는 건빵)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나폴레옹 전쟁 때 스페인 전장에서 싸우던 영국군 병사가 배급받던 것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의 입맛은 참 꾸준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할지... 다만 쇠고기가 중대 단위로 커다란 나무통에 넣어져 배급되지 않고 한끼용 깡통으로 포장되어 대량 배포되었다는 것만 차이가 나는군요.  참고로, 양철 깡통이 발명된 것은 1820년대인데, 영국군이 정식으로 '깡통 야전 식량'을 배급하기 시작한 것은 1900년 전후의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 때였다고 하니까,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의 식량 사정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 위에서 언급한 324만톤이라는 식량이, 영국을 분명히 떠나기는 떠났으나, 그렇다고 다 프랑스 항구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독일 잠수함 작전이 효과적으로 운영되면서 서부 전선의 영국군도 배가 고파지기 시작합니다.  1916년이 되면서, 고기 배급량은 280그램에서 170그램으로 줄어어들었고, 나중에는 최전선이 아닌 부대에 대해서는, 3일에 한번 꼴로 고기가 배급됩니다. 하지만 실제 병사들이 느낀 것은 이것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는 떼먹는 모양입니...

육류 요리의 정점, 편육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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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요리가 고기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양 고기 요리가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그쪽 방면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그런 생각에 절대 동의하지 않으시겠만요.  가령 삼겹살이나 생갈비, 스테이크 같은 것들은 그냥 고기를 불에 굽는 것이쟎습니까 ?  솔직히 '고기는 저 식당이 맛있다'라는 이야기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맛에 차이가 있다면 그건 재료의 차이겠지요.  그냥 날고기를, 그것도 손님들이 직접 구워 먹는데 무슨 요리 솜씨가 필요하겠습니까 ? 물론 고기를 어떻게 자르느냐 하는 것도 요리라고 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긴 합니다.  가령 생선회같은 경우는 아예 불에 굽거나 삶는 과정조차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생선회는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는 요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생선초밥은 예외...) 확실한 것은 고기 요리가 나물이나 해산물로 만드는 요리에 비하면 쉬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역시 요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샐러드를 만들 때도, 채소를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이 꽤 귀찮은 일입니다만, 삼겹살이나 스테이크는 씻는 과정조차 없쟎습니까 ?  불고기처럼 양념장에 재워서 각종 채소와 함께 익혀먹는 요리는 물론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이지요.  하지만 서양 고기 요리는 그렇게 복잡한 조리 과정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고기 요리라고, 특히 제게 멸시받는 서양 고기 요리라고 다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주 손이 많이 가는 요리도 있습니다.   Sharpe's Regiment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4년 영국) ---------- 그 꾸러미는 낡은 검은색 망토로 싸여 있었다.  안에는 기름 종이로 포장된, 희미한 색깔의 부슬부슬 부서지는 치즈 덩어리 큰 것 하나와, 반 덩어리의 빵, 그리고 따로 기름...

나폴레옹 관련 소설들 중 식사 장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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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블로워 시리즈 중 제8편은 "The commodore"입니다.  혼블로워가 임시 제독(commodore)이 되어, 소함대를 이끌고 발트해로 진입해서, 프랑스와의 전쟁을 저울질하고 있던 러시아의 짜르 알렉상드르에게 프랑스에게 저항하도록 외교관 역할을 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알렉상드르가 불시에 혼블로워의 기함을 방문하여, 영국 해군 측에서 점심 식사를 대접합니다만, 혼블로워는 일부러 평상시 영국군 장교들이 먹는 식사를 그대로 제공하기로 합니다. The Commodore by C.S.Forester (배경 : 1812년 러시아) ------------------------------- 오찬은 혼블로워의 선실에서 8명이 함께 들었다. 혼블로워와, 기함의 함장인 부시, 그리고 2명의 선임 장교 및 4명의 러시아인이 참석했다. 부시는 형편없는 식탁 위의 음식을 보고 초조감에 땀이 흐를 정도였다. 마지막 순간에 부시는 혼블로워를 한쪽으로 끌어내어, 제발 고집 피우지말고 전함의 평범한 식사에 덧붙여 고급스러운 특식도 같이 대접을 하자고 사정을 했지만, 혼블로워는 요지부동이었다. 부시는 짜르를 잘 대접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제독을 접대하는 하급 장교가 평범한 선원에게 배급되는 소금에 절인 쇠고기를 식탁에 올려놓는다면, 그는 승진할 희망을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고지식한 부시는 이 상황을 그 이외의 관점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짜르는 브라운이 혼블로워 앞에 차려준 낡아빠진 주석 수프 그릇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완두콩 수프입니다, 폐하." 혼블로워가 설명했다. "선상의 생활에서는 아주 근사한 음식 중의 하나이지요." 칼 린은 오랜 습관에 따라 무심코 그의 건빵을 식탁에 두드리기 시작하다가, 짜르 앞에서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어 흠칫 멈추었다.  그러나, 마치 죄라도 지은 마냥,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혼블로워가 모두에게 내렸던 명령을 기억해낸 것이다.  즉, 혼블로워는...

나폴레옹 시대의 아침식사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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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그냥 가볍게, 초심을 살려서, 제가 좋아했던 3대 나폴레옹 전쟁 소설 시리즈인 혼블로워, 샤프, 잭 오브리 시리즈들 중에서 아침식사 장면만 몇몇 번역을 해보았습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보세요.  다만, 출출한 야밤에 읽으시면 좀 곤란하겠네요. Mr. Midshipman Hornblower by C.S.Forester (배경 : 1795년 프랑스) --------------------- (프랑스 망명귀족들이 영국 해군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퀴베롱 지역에 상륙합니다.  사관후보생 혼블로워는 통역으로 이들과 동행합니다.) 그들은 번쩍이는 구리 냄비가 벽에 걸린 커다란 주방으로 들어갔고, 말이 없는 여자가 커피와 빵을 내왔다.  그녀는 애국자로서 열정적인 반혁명주의자일 수도 있었겠지만, 최소한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녀의 감정은 이 귀족 패거리들이 자신의 집을 멋대로 점거하고는 자신의 음식을 돈도 내지 않고 마음대로 먹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쉽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망명 귀족들의 군대가 징발한 마차나 말들 중에는 그녀 소유의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제밤에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주민들 중 몇몇이 그녀의 친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커피를 내왔고, 참모진들은 박차를 단 장화를 신은 채 커다란 주방 여기저기에 서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혼블로워는 그의 컵과 빵 한조각을 손에 들었다.  이 순간 이전에는 4달 동안이나 건빵 외에는 빵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맛이 좋은지 나쁜지 뭐라고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는 전에 커피를 겨우 3~4번 정도 밖에 마셔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컵을 두번째 들어올렸을 때, 그는 마시지 않았다.  마시기 직전에 저 멀리 어디선가 대포 소리가 울렸기 때문에, 그는 컵을 내려 놓고 얼어붙은 듯 굳어 버렸던...

차가운 셔벳, 뜨거운 중동에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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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ason's Harbour by Patrick O'Brian (배경 : 1813년 이집트) --------------------- (잭은 임무를 띠고 이집트의 지배자인 투르크 태수(Bey)를 만나는데, 하필 때가 라마단 기간입니다.) "태수께서 여쭙습니다.  뭔가 다과라도 드릴까요 ?" "태수께서도 드셔도 될 때, 함께 셔벳을 마시면 기쁘겠다고 답해주시요." "태수께서는 아크레에서 보나파르트를 무찌를 때 스미스 경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당신의 제복을 금방 알아보신다고 하시는군요." (중략... 스티븐과 잭이 항구에 돌아와 관문에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네가 뱃일로 분주한 동안 난 그와, 또 그가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콥트교도(이집트의 기독교 일파)인 의사와 오후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네.  그 신사분은 우리가 이집트 태수와 더 업무를 진행할 때 우리를 위해 일해줄 거라네.  게다가 그 신사분은 이 지역의 그리스 및 아르메니아 상인들과 선이 넓게 닿아있는데다, 정보에 대한 욕구가 아주 대단하더군.  이 경탄을 자아내는 셔벳을, 아마 천지 창조 이래 유일하게 시원한 음식이 아닌가 하는데, 한 주전자 더 시키고나서 내가 알아낸 바를 이야기해 주는 것이 어떻겠나 ? (중략...) 셔벳은 냉기로 김이 서린 채 나왔다.  스티븐은 셔벳을 잔뜩 마시고는 말했다.  "알고보니, 그 갤리선의 화물에 대해서는 우리 정보가 정확했지만, 그 출발 시간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었더구만." ---------------------------------------------------------------------------------------------- 저 위에 언급된 대로,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한 덕택에, 오스만 투르크는 일단은 프랑스와 적국이 되었고, 영국은 손도 안대고 투르크의 우방이 되어 버렸습...

마늘을 사랑한 영국인, 리처드 샤프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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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차두리 선수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이 신문에 났었습니다.  그때 아주 인상적인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여기서 적응하려면 독일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한국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  마늘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다음날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뭐가 미안하지요 ?  마늘 냄새가 나는 것이 미안한거지요.  제가 다른 곳에서 듣기로도, 유학생이 주말에 한국 음식 해먹고 가면 서양애들은 귀신처럼 냄새로 알아차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양애들은 대개 마늘 냄새를 무척이나 싫어하지요. 이렇게 마늘 냄새가 그 다음날까지 나는 것은 이유가 있답니다.  Allyl methyl sulfide (AMS, 황화 알릴 메틸)이라는 물질이 마늘 냄새의 주성분인데, 이 성분은 사람 몸에서 분해가 되지 않고 그대로 혈액까지 흡수가 된답니다.  그 혈액이 돌고 돌아 폐를 통해 숨결로 나오고, 또 땀에도 섞여 나오기 때문에, 마늘 냄새에 예민한 서양것들은 우리가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1~2일 뒤까지도 우리 몸에서 마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실은 이런 '카더라' 통신도 들은 바 있어요.  즉, 잘게 다진 마늘즙을 갓난아이의 발바닥에 발라놓고 몇시간 지난 뒤에 아이의 숨결을 맡아보면, 희미하게 마늘냄새가 난다는 거지요.  얇은 아이의 피부를 AMS가 뚫고 들어가 혈액에 섞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총각 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신기하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나도 아이를 낳으면 한번 테스트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차마 우리 아이에게는 그딴 짓 못하겠더라고요.  (그럼 남의 아이에게는...??) 그런데 마늘 냄새가 촌스러운가요 ?  솔직히 약간 촌스럽긴 합니다.  기분 좋은 향수는 아니쟎아요.  하지만 음식에 들어가면 정말 좋은 맛을 내주는 것도 맞지...

나폴레옹 시대의 청량 음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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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습니다.  전에 제가 조선시대 임금님보다도 요즘 서민이 더 호화로운 삶을 사는 편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미국이나 유럽 사회에서도 1950년대의 서민들에게 19세기 말의 귀족들의 생활을 하게 한다면 불편해서 못 견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건 특히 여름철에 그렇습니다.  전기와 냉장고, 에어컨이 정말 대단한 차이를 만들어내거든요.  이렇게 날씨가 더워지면 뭔가 찬 음료수를 찾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전기도 냉장고도 없던 나폴레옹 시대, 유럽인들은 여름철에 어떤 음료를 주로 마셨을까요 ? Hornblower in the West Indies by C.S. Forester (배경: 1821년 자메이카) ----------------- (혼블로워 제독이 자메이카 함대 사무실 건물에 막 출근해서 비서 및 부관의 인사를 받습니다.) "아침이구만."  (원문에서는 Good morning 대신 그냥 Morning이라고 했습니다.) 혼블로워가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아직 아침 커피를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면 '아침'이라는 말 앞에 '좋은'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말했을 것이다. 그가 책상에 앉자 부관인 제라드가 아침 보고를 시작했고, 비서 스펜들러브가 서류 뭉치를 들고 그의 어깨 너머로 다가왔다. (...중략...  혼블로워가 부하들에게 짜증을 부리며 보고를 받습니다.) 그는 어깨너머로 비서를 쳐다보았다.  "자넨 보고거리로 뭘 가지고 있나, 스펜들러브 ?" 스펜들러브는 서둘러 손에 든 서류를 정리했다.  혼블로워의 커피는 이제 막 어느 순간에라도 도착하기 직전이었는데, 스펜들러브는 그의 상사가 최소한 그 커피의 절반 정도를 마시기 전에는 내놓고 싶지 않은 보고거리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여기 석월 (ultimo) 31일자의 조선소 통계 보고서가 있습니다, 남작님." 스펜들러브가 말했다. "...

과연 장발장이 훔친 빵의 정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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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인터넷에 유머 글이 하나 올라온 걸 봤습니다.  '장발장이 훔친 빵' 또는 '장발장이 잘못했네' 라는 것이었는데, 어른 상체만한 크기의 거대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도망치는 장발장의 그림이 함께 있는 글이었습니다. 사실 장발장이 어떤 빵을 훔쳤는지는 레미제라블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 원문을 찾아봐도, 그냥 pain(빵)을 훔쳤다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유머 글에서 나온 그림처럼 거대한 빵은 아니었습니다.  레미제라블 원본에 보면 창살 사이로 유리를 깨고 빵을 훔쳤다고 되어 있거든요.  원작 삽화도 있습니다. (장발장은 이 그림에서는 손만 나옵니다...) 그 유머 글에서 장발장이 훔쳤다고 주장된 거대한 빵은 아마도 깡파뉴 빵(pain de campagne)일 것입니다.  불어로 pain이 빵이고 campagne는 country니까, 영어로 하면 그냥 country bread, 즉 시골 빵 정도가 되겠습니다. (깡파뉴 빵입니다.) 이 빵의 특징은 크다는 것입니다.  대략 무게가 작은 것은 4 파운드 (1.8kg), 큰 것은 12 파운드 (5.4kg)까지 나가니까 엄청나게 큰 빵입니다.  보통 식빵 1봉지가 500g 정도되니까, 왠만한 가족 하나가 며칠을 먹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왜 이렇게 큰 빵을 구웠을까요 ?  바로 오븐 때문이었습니다. 전에 네이버에 연재되던 '야매요리'라는 웹툰을 저도 즐겨 봤는데, 거기 주인공인 야매토끼는 집에 오븐이 없어서 항상 '야매'로 전기밥솥이나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을 이용하지요.  제대로 된 가스 오븐은 부자집에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옛날 유럽 사람들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븐이라는 물건은 만드는데도 돈이 많이 들었고, 또 뭔가 구울라치면 연료가 우라지게 많이 들어가는 물건이었거든요.  옛날에는 휘발유나 가스, 전기를 쓴 것이 아...

19세기 디저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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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나폴레옹 시대로 타임 워프를 한다고 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까 ?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 생활 편의품의 부족 때문에 몹시 불편할 것입니다.  냉장고나 에어컨, 수세식 화장실과 형광등 따위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런 것 말고도 당장 여러분들은 TV와 인터넷이 없어서 무척이나 심심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분은 여러분과 나폴레옹 시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부분입니다.  즉, 심심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건 귀족이나 상류층 이야기입니다.  일반 서민들이야 먹고 살기 바빠서 심심하다는 사치스러운 생각을 할 틈이 없었지요. 그렇게 오락거리가 없는 시절에 인간이 탐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이 무엇이겠습니까 ?  당연히 식사입니다.  (다른 걸 생각하신 분들은 반성하세요.)  하루의 일과에서 식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공직이나 군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원래 직업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하루 일과를 보면 정말 한가롭기 짝이 없었는데, 그런 무료한 일상을 달래주는 가장 큰 행사가 바로 오찬이었습니다.  친구나 이웃을 손님으로 모셔 놓고 멋진 식사를 대접하면서 환담을 나누고, 이후에 여흥으로 악기 연주나 노래를 듣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지요. 물론 이건 귀족 층의 이야기였고, 서민들은 말라비틀어진 빵이건 감자건 그저 배만 채울 수 있어도 감지덕지였습니다.  요즘에는 아주 많지만 당시에는 전혀 없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음식물 쓰레기입니다.  음식을 버리다니,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엔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으니 당연히 남는 음식물 없이 찌꺼기까지 다 먹었습니다.  귀족들은 물론 그러지 않았습니다만, 귀족들 집에 있는 하인들은 당연히 귀족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반갑게 잘 먹었습니다. ...

영국에서는 말이, 스코틀랜드에서는 사람이 먹는 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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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e's Trafalgar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5년 인도양 무역선 상) ----------------------------- 아침식사는 매일 오전 8시였다. 3등실의 승객들은 종종 그룹으로 나뉘어, 각 그룹 내에서 당번을 정해 앞갑판(forecastle) 쪽에 있는 주방으로부터 버구(burgoo) 한단지를 가져왔다. 버구라는 것은 오트밀 죽에 밤새 주방 난로에서 고기를 삶을 때 나온 쇠고기 기름 조각을 섞은 것이었다. 점심은 정오에 있었는데, 이 때의 메뉴도 역시 버구였다. 다만 점심 때의 버구에는 좀 탄데다 덩어리진 오트밀에 좀더 큰 고기 조각 또는 질긴 말린 생선 조각이 섞여 나왔다. 일요일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과 돌처럼 딱딱한 건빵이 나왔는데, 건빵은 바구미 투성이어서 탁탁 두들겨 벌레를 빼내야 했다. 비스킷은 끊임없이 씹어야 했는데, 마치 벽돌을 으깨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건빵을 두들길 때 빠져나오지 못한 벌레가 이따금씩 씹혀서 색다른 맛을 내기도 했다. 차는 오후 4시에 제공되었으나, 이는 배 고물 쪽의 1등실 승객들에게만 제공되었고, 3등실 승객들은 저녁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 메뉴도 그저 말린 생선에 비스킷, 그리고 벌레 구멍이 숭숭 뚫린 딱딱한 치즈였다. The Happy Return by C. S. Forester  (배경 : 1808년, 영국 프리깃함 HMS Lydia 함상) ------------------------------- 혼블로워 함장이 갑판 아래로 내려가니, 급사인 폴휠이 아침식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와 버구입니다, 함장님."  폴휠이 말했다. 혼블로워는 식탁에 앉았다.  지난 7개월 간 항해를 하다보니, 사품이라고 할만 한 식량은 다 바닥이 난 상태였다.  커피는 까맣게 태운 빵을 우려낸 물에 불과했고, 그 맛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달고 뜨겁다는 것 뿐이었다.  버구라는 것은 해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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