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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배급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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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 서부전선으로 배송된 식량의 양은 무려 324만톤에 달했습니다.  324만톤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아무튼 엄청난 양인 것만은 확실하지요.  덕분에 대전 초기, 영국군의 급식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1인당 하루 배급량은 빵과 건빵 외에도, 280그램의 고기와 230그램의 채소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채소보다 고기의 공급량이 많은 것을 보면 정말 영국인답지요 ?  ( 영국인은 하루에 네끼를 먹었다 http://blog.daum.net/nasica/5561033 참조 ) 이 당시 영국군의 주된 식량은 bully라고 불렸던 소금에 절인 쇠고기 깡통과 빵(또는 건빵)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나폴레옹 전쟁 때 스페인 전장에서 싸우던 영국군 병사가 배급받던 것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의 입맛은 참 꾸준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할지... 다만 쇠고기가 중대 단위로 커다란 나무통에 넣어져 배급되지 않고 한끼용 깡통으로 포장되어 대량 배포되었다는 것만 차이가 나는군요.  참고로, 양철 깡통이 발명된 것은 1820년대인데, 영국군이 정식으로 '깡통 야전 식량'을 배급하기 시작한 것은 1900년 전후의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 때였다고 하니까,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의 식량 사정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 위에서 언급한 324만톤이라는 식량이, 영국을 분명히 떠나기는 떠났으나, 그렇다고 다 프랑스 항구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독일 잠수함 작전이 효과적으로 운영되면서 서부 전선의 영국군도 배가 고파지기 시작합니다.  1916년이 되면서, 고기 배급량은 280그램에서 170그램으로 줄어어들었고, 나중에는 최전선이 아닌 부대에 대해서는, 3일에 한번 꼴로 고기가 배급됩니다. 하지만 실제 병사들이 느낀 것은 이것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는 떼먹는 모양입니...

제1차 세계대전 참호전의 파생물 - 취사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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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카투사로 군 생활을 했던 미군 부대에는 식당(mess hall)이 2개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미군 애들 중 취사가 주특기인 애들이 요리도 하고 식당 관리도 했습니다만, 다른 하나에서는 한국인 아저씨들이 미국인 민간 군속 아저씨의 관리 하에 그런 주방일을 했습니다.  즉, 식당이 거의 민영화되어 있더라고요. 카투사에 가게 되면 미군에서만 사용하는 희한한 용어들을 몇개 배우게 되는데, 그 중 kitchen pol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주방을 감시하는 경찰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방에서 (요리 외에) 하는 청소 및 설거지 같은 잡역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Police up 이라는 단어는 동사로서 뭔가를 청소하다 라는 뜻이 있거든요.  미군의 역사를 보면 예전에는 뭔가 가벼운 죄를 저지른 병사들에게 처벌로 이런 kitchen police를 시켰습니다.  감자껍질 깎기나 바닥 청소 뭐 그런 것들이지요. 원래 미군은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약간 천하게 여기는 모양입니다.  한국군에서는 취사병을 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미군은 취사특기병을 뭐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벌로 일반 전투병을 주방 허드렛일을 시키기도 하는 것이고, 또 카투사 초창기에는 카투사를 주로 취사병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영화 진주만을 보더라도 흑인인 쿠바 구딩 주니어는 전함에서 멸시받는 주방일을 하면서, 백인 병사들의 존중을 끌어내기 위해 권투를 하는 것으로 나오지요.  한국 전쟁 때만 하더라도 미군은 백인 부대 속에 흑인을 따로 집어 넣지 않았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아예 유색 인종에게는 전투 임무를 주지 않았습니다.  열등한 유색 인종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도 있고 또 흑인들에게 무장 훈련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속셈도 있었지요. 이렇게 천대 받는 취사병은 그다지 오랜 역사를 가진 병과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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